I develop something for fun

블로그 첫 글로 어떤 주제를 다룰지 고민하다가 내가 걸어온 길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이 글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날 때 나를 소개하는 키워드는 다음 세가지다: 프론트엔드 개발자, 비전공자, 은행원.

보통의 대화 흐름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 무슨 일 하세요?

나: 웹 개발을 하는데 그 중에서도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한지 삼년 됐어요.

상대방: 원래 전공자셨어요?

나: 학부는 경영 쪽이라 비전공자고, 원래는 은행을 다녔어요.

그럼 은행은 얼마나 다녔냐, 5년을 다녔다고 얘길 하면 내 나이를 가늠하면서 말도 안 되는 경력이라고 생각한다. 그제서야 말하는 것이다. 특성화고를 졸업해서 20살 때부터 은행에서 일했고 대학 졸업 후에 개발자가 됐다고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대부분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냐며 신기해 하는데, 사실 내 인생의 결정 과정은 꽤나 단순했다.

중학생 때 나는 대학이 결국 취업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굳이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취직하는 게 더 빠른 길이었다. 그렇게 특성화고에 진학했고, 졸업 후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은행에 들어갔다. 적성이 맞을지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단지 사람들에게 좋은 직장으로 보이는 곳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후 정신 없이 일만 하고 살다가 한 3년쯤 되니 친구들이 대학교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운 좋게 대학에 합격했고 이후 은행은 1년 정도 더 다니다가 학업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퇴사했다. 당시에는 은행에 다니는 게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거기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 배웠고 지금의 내 모습이 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던 곳이라 의미가 깊은 경험이었다.

대학 수업은 나를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만들었다. 기억에 남는 수업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기업가 정신과 창업트렌드"가 또 하나의 터닝 포인트였다.

당시에 나는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직업을 선택했을 때에 겪었던 괴로움이 너무 컸기 때문에 졸업 이후에는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 와중에 창업가 정신 수업을 들으며 이런 사람들 옆에서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했고 엑셀러레이터 같은 직업을 꿈꿨다. 그래서 창업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대학원 원서를 준비하며 창업 아이템을 구상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모든 서비스에는 개발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개발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남에게 맡겨야 했는데, 그게 정말 ‘내가 만든 서비스’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처음부터 은행원이었던 건 아니었다.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어느 순간 나도 은행원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개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처음엔 할 줄 몰라도 배우면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가 있다면 그걸 직접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창업대학원 대신 개발자 부트캠프로 눈을 돌렸다.

부트캠프에선 6개월 간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일하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른 외부 요인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일만 하면 된다는 게 얼마나 내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일인지, 그리고 거기서 오는 행복감이 어떤 건지도 느꼈다.

부트캠프 수료 후에 프론트엔드 코치로 일해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 왔고 나는 기꺼이 수락했다. 일주일에 두번 세시간씩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 수업을 위해 거의 항상 밤을 새며 자료를 준비했다. 그때는 그게 힘든지도 모르고 재미있게 일했었다. 내가 부트캠프를 다녔으니 여기 다니는 사람들의 고민하는 지점을 이미 알고 있었고, 또 나는 프로그래밍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왕초보자들이 겪는 어려움도 이해했다.

코치로 일하는 것도 또 다른 성장이었다. 어떤 개념에 대해 설명하려면 내가 그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했고,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더 많이 배웠다. 이 경험 덕분에 기술 면접을 통과하고 개발자로 첫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첫 회사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이었는데, 개발자가 나를 채용한 CTO님, 나, 그리고 재택 근무를 하는 다른 개발자 한 명이었다. 회사 코드는 처음 보는 거라 긴장하기도 했지만 잘 해내려고 많이 애썼고 다행스럽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 회사는 8개월 정도 다니다가 나왔는데 나를 채용한 CTO님이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그 분은 자기가 가는 회사로 같이 가자고 말씀해주셨지만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두번째 회사는 핀테크 스타트업이었다. 이 회사의 개발자들은 약 10명 정도였고, 여기서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나 혼자였다. 좋은 사수에게서 일을 배운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사수가 없다는 점이 좀 무섭기도 했다. 프론트엔드 관련해선 나 혼자 온전히 결정을 했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최선의 그리고 최고의 선택을 하려고 정말 많이 찾아보고 고민했다.

이 회사는 첫 회사보다 규모가 커서 기획자, 백엔드 개발자와 협업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회사에선 2년 정도 다녔는데, 함께 일했던 CTO님이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고 그 분이 같이 가자고 말씀해주셨다. 첫 회사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단 이유로 다른 회사를 갔으니 이번에는 익숙한 동료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그 분들과 함께 이직했다.

그래서 지금 다니게 된 회사는 재건축 재개발 스타트업이다. 도메인이 생소하기도 하고 회사가 이제 매출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라 요구사항이 급격하게 변하는 경우가 많아 일하기 쉽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 힘듦은 성장통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도 일하면서 많이 배웠으니까 말이다.

이 회사에선 다른 프론트엔드 개발자와 협업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타 직군의 사람들과는 협업하는 건 그렇게 어려워 하지 않았지만 같은 프론트엔드 개발자들끼리 협업하는 건 어려워한단 걸 알게 되었다. 지금 와서 이유를 돌이켜보면 내가 기술적으로 부족했기도 하고, 내 주장을 갖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와중에 일정이 빠듯해지고 일단 기능을 완성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면서 내 개발 역량이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퇴사하기로 결정했고, 이제 나에게 맡겨진 기능이 하나 있는데 잘 마무리 하고 나가고 싶다.

그럼 이제 퇴사 이후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선은 좀 더 공부를 할 예정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개발자가 내 적성에 맞는 직업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그래도 오래 하고 싶은 직업인 건 분명하다. 그리고 일을 잘 하고 싶다.

그래서 이번 퇴사는 그냥 쉬는 시간이 아니라 일을 잘하는 개발자가 되기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장이 너무 안 좋으니 퇴사하지 말고 회사에 꼭 붙어있으란 말도 많이 들었고, 나도 공감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괜찮을 것 같다. 새로운 걸 얻기 위해선 쥐고 있는 걸 놓기도 해야 한다. 다시 즐겁게 일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니 일단 해보려고 한다. 언젠간 이 과정도 터닝포인트로 소개할 수 있길 기대한다.